루체 님의 글
누구나 자신만의 은밀하고도 비밀스런 마음이라는 곳간 안에 한 번쯤은 각자의 영웅을 담아내며 사는 시기가 있을 것이다.
내가 속한 내 나라 대한민국이 36년간 일제의 식민통치 아래에 있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인식하게 되었던 그 어린 시절부터 일제 시대를 반영하는 각종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한일전으로 명명되는 스포츠들을 바라보면서 또한 가끔씩 불거져 나오는 위안부, 신사참배 등의 기사를 접하는 성인이 되어서까지 도마 안중근은 망국의 내 나라 조선과 지금의 대한민국을 잇는 어떤 분기점 또는 화살촉과 같은 의미를 띈 영웅적인 존재였었다.
허나 내가 믿고 있는 천주교라는 틀 안에서 인간 안중근을 어떻게 바라봐야만 좋을 지에 대한 먹먹한 갈등에서 비롯된 허탈감이 들기 시작했고 만약 신이라면, 안중근이 믿어왔던 하느님이 계시다면 그 존재는 안중근을 내가 영웅으로 여기듯 그렇게 느끼고 계실까 하는 본질적인 궁금증과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었다.
이에 대한 결론부터 말하자면 故 김수환 추기경(당시 서울 대교구장)께서는 1993년 8월 21일 안중근 추모 미사를 집전했으며 2000년 12월 3일 한국 천주교회는 대희년을 맞아서 '쇄신과 화해' 라는 문건을 발표하며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했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는 입장을 밝혔던 것이다.
이로써, 안중근을 향한 나의 엇갈려왔던 생각과 감정들이 하나의 지점으로 결론나며 더이상 안중근의 선택이 살인이냐 정당방위이냐를 놓고 내면에서 싸워왔던 갑론을박에 대한 물음표의 여정을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그당시 제국주의자들의 폭력과 기만이 담겨있는 시대상을 의식했는지, 저자는 자신의 신념이나 의식 등을 표면 위로 적극 나타내려하지 않고 최대한 담담한 관찰자의 눈으로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이토의 눈으로 바라보는 만주와 조선,, 그리고 안중근이 이토를 죽이려 하는 이유,, 이토를 사살한 이후에 이어지는 안중근에 대한 피고인 심문에 이르기까지 저자 김훈은 자신의 의도를 애써 감추고 독자의 판단에 맡기고자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저자 역시 자신의 마음이라는 곳간 안에 초연히 자리잡고 있을 안중근이라는 인물에 대한 깊은 마음이 있었을 터인데, 그러함에도 김훈 작가는 사실적 자료에 기반을 두며, 인물의 심리 묘사에 대한 것들도 최대한 감성적인 부분이나 자의적인 해석을 자제하려고 애쓴 듯이 보여졌다.
바로 그 점에서 안중근이 살던 시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이지 않고 갈수록 증폭되어가는 '테러범이냐 투사이냐'로 이견을 빗고 있는 시대상의 비극 그리고 나라와 나라 간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것이라 느껴지니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날 것인지를 뻔히 알고 있었음에도 먹먹한 내 가슴은 도통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