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가리는 엣티제놈 님의 글
처음 이 책을 접한 곳은 서점이었다. 열역학을 배운 경험이 있어 제목에 이끌려 보게 되었다. 그렇게 구매한 지 1년이 지나서야 완독하게 되었다.
이 책은 저명한 문명 비평가인 제레미 리프킨의 저서이다. 리프킨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쇠고기를 넘어서⌟라는 글을 통해 이미 접한 적이 있는 친숙한 인물이다. 이 책 역시 환경 관련 서적일 것이라는 짐작으로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깊이 있는 통찰을 통해 환경 문제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엔트로피 법칙이라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환경 보전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산업, 기술, 수송, 군대, 교육, 보건 등 다양한 분야의 사례를 통해 우리 사회가 '엔트로피 분수령'에 진입했음을 설명한다.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엔트로피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엔트로피는 열역학 제2법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정규 교육과정에서 열역학 제0법칙부터 제3법칙까지 배우지만 (제4법칙은 아직 공인되지 않음), 각 법칙의 정의를 암기하는 것만으로는 엔트로피 개념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실제로 대학 교수들의 심도 깊은 강의를 듣더라도, 공학 전공자조차 열역학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열역학 법칙 중 제2법칙이 이 책의 핵심 소재인데,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음식을 섭취하여 1,000kcal의 에너지를 얻었다고 가정했을 때, 배설물을 모아 다시 1,000kcal 상당의 음식, 즉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열역학 제3법칙은 절대온도 0K(섭씨 -273.15도)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하며, 결국 엔트로피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뒷받침한다. (TMI : ΔS≥0로 표시되지만 실제로는 ΔS>0)
저자는 인류가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결국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존재, 즉 에너지를 끊임없이 소비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책을 읽으면서 에너지와 함께 고려해야 할 중요한 개념은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물질은 순환할 수 있으며, 이 순환 과정에서 에너지가 흐르기 때문이다. 나는 한 사람이 밥을 먹는 행위를 인류와 지구 전체의 차원으로 확장하여 생각할 수 있다면, 환경 문제는 석유 이야기가 아닌 '탄소'라는 물질, 즉 원소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보았다.
물의 순환처럼 탄소의 순환 과정을 '탄소 순환(C-cycl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지구에 순환해야 하는 탄소의 양이 100개라고 가정했을 때, 인류가 땔감을 태우거나, 토양에 묻거나, 대기로 배출하는 등 지구를 순환하는 탄소의 총량이 100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TMI : 정상 상태(steady state)) 하지만 인류는 땅을 파서 원유를 채굴했고, 이 원유는 탄소 함량이 매우 높아, 기존의 순환 과정에 갑자기 엄청난 양의 탄소를 투입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탄소 순환의 균형을 깨뜨리는 일종의 반칙과 같다.
이러한 이유로 '탄소 중립'이라는 개념은 지구를 순환하는 탄소량을 일정하게 유지하자는 목표를 지향하며, 이를 위해 실질적으로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을 감축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산화탄소를 구성하는 탄소(C)는 대기 중에서 매우 안정적인 상태로 존재하며, 대기 중에 과도하게 축적되어 지구 온난화를 심화시킨다. 화학적으로 안정된 구조를 가지고 있어 분해하기도 어렵고, 온난화 기여도 1위가 될 만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 양이 워낙 많아 온난화의 주범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저자의 관점은 에너지 소비의 주체가 인간 활동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에너지 흐름을 설명하기 위해 엔트로피 개념을 활용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환경 문제와 관련하여 에너지 사용을 논할 때 물질의 순환이나 이동에 대한 언급이 더 많았다면 독자들이 내용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질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탄소 중립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데 더욱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에 출간되었지만.)
책 내용 중 수송 분야에서 우리가 에너지(연료)를 과소비하고 있다는 주장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대학생 시절 페이스북에서 보았던 "경기도민은 인생의 20%를 지하철(대중교통)에서 보낸다"라는 짤이 떠올랐다.
이는 웃픈 현실을 반영하는 구절이다. 각자의 이유는 있겠지만, 결국 수도권에 거주하려는 욕심 때문에 환경을 고려할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딜레마는 '환경'이라는 단어가 중립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Environment? Circumstance?)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단순히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고 채식을 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토론 주제로 자주 등장하는 대립되는 관점은 바로 "개발 vs 환경 보존"이다. 개발과 환경의 대립 구도를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윤리적 관점: 환경을 보존해야 하는 당위성을 제시한다. 미래 세대를 위해, 혹은 자연 보호를 목적으로 윤리성을 강조하며 다소 가치 판단의 영역을 시사하는 관점이다.
○ 경제적 관점: 기술 개발이 우선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하나의 기술이 수십, 수백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일자리 창출과 도시 문화 조성에 기여한다는 근거를 들어 환경보다는 개발을 중시하는 관점이다.
○ 생태계 및 사회적 관점: 인간을 생태계 구성원의 일부로 간주하여 환경 보존과 기술 개발의 풍요를 종합적으로 논하는 관점이다. 개발과 보존의 딜레마는 결국 '지속 가능한 개발'을 추구하며 양립 가능한 방안을 모색하지만, 실제로 달성하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저자의 환경 보존 주장은 결국 우리는 에너지를 소비하기만 하는 존재이므로 지금부터라도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