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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끝내 캔버스를 채워낸 거장의 발자취가 건네는 치열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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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을 보고 저도 모르게 교수님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게 되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철도, 칼, 그림(석영중 교수의 백치 강의)라는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었을 때 백치 소설을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음을 알게 됐고, 그것이 백치를 읽게 된 이유입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기엔 아직 용기가 나지 않았으나, 백치는 비교적 분량이 적어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소설 백치는 주인공 미시킨 공작을 중심으로 나스타샤, 로고진, 가냐, 아글라야를 둘러싼 사랑 이야기입니다. 서로 얽히고 섥힌 관계 속에 결국 극한에 치닫습니다. 소설의 결말은 말 그대로 등장인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빚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부 내용은 생략) 다만, 다시 백치로 돌아간 미시킨 공작(간질 환자)과 송장이 된 나스타샤는 마음 한 구석을 아프게 합니다.

사실 제가 책에서 주목한 부분은 소설보다 소설 앞에 배치된 해설입니다. 옛날 책답게 역자의 솔직담백한 해설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인용 문장의 캔버스는 도스토옙스키와 닮은 고흐의 사례(텅 빈 캔퍼스를 가장 두려워 함)를 설명합니다. 이를 통해 시베리아 수용소를 전전하고, 저작권을 빼앗긴 계약으로 해외를 떠돌던 도스토옙스키가 결국 러시아 문학의 정수가 된 것처럼, 결국 매일을 견디며 살아가면 결국 텅 빈 캔퍼스도 아름다운 작품이 되리라고 역자는 말합니다.

마침 글을 쓴 당일, 오랜 벗을 당일 약속으로 만나 공원을 산책했습니다. 나이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순간을 목전에 두고 한숨은 늘며 주위 사람들의 변화를 보고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머리가 복잡하다며 서로 위안 삼았습니다. 고민을 툭 터놓고 말한 뒤 걷고 걸은 끝에 얻은 결론은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없다는 겁니다. 그냥 열심히 살자는 게 전부였습니다.

걷는 순간 조차 잦은 한숨 밖에 나오지 않는 현실이지만, 백치의 주인공 미시킨 공작처럼 복잡한 연애사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풍부한 캔버스 미래를 꿈꿔봅니다.

(작성일자: 2026.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