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참을 고민하다 연필을 들었다. 이 책에 관한 독후감은 여느 독후감과 다를 바가 없지만 책 자체의 일종의 '수준'이 높아 보인다랄까? 내 순수 의도였던, 단순 교양서적을 읽는 것이라면 이 책은 무리가 있다. 실제로 대학의 철학 수업 교재로 쓰이며 번역 이슈로 내가 실제로 읽은 이 책은 현재 절판 상태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일반인에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책을 읽기 전에 철학에 관한 기초 지식이 필요하며 데카르트의 원론(原論)적인 접근을 엿볼 수는 있지만 비전공자에게 친절한 당위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20세기 번역답게 영어나 라틴어의 어순대로, 일명 '직독 직해'를 하면서 우리말과 호응이 되지 않은 문장들이 많아서 독서 자체 집중이 어렵다. 가령 "A는 A이다."라고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을, "~하고, ~하지만, ~해서 ㅇㅇ하다." 등의 나열의 패턴을 끊지 않고 접속사와 조사로만 연결해서 서술해 놓았기 때문이다. 내용을 주체적으로 인지한다면 위와 같은 번역을 할 이유가 없다. 이런 면에서 나도 책을 읽는 동안 끊어서 이해한 경우도 있으며(심지어 한국말인데) 어떤 문장은 대우 명제를 취하여 이해를 도운 적도 있다. 데카르트의 사상이나 어떤 교양적 측면을 원할 경우에는 이 책보다 요즘 많이 읽을 법한 교양서가 일반인들에게 더 접근이 쉬울 것이다.
칼 융의 심리학을 이해하고 싶었다.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에서 거론되는 데카르트의 명제들을 융이 이용했다는 사실을 주워 들었다. 융의 심리학에서 다룬 '집단의식'을 이해하고 싶었고 그것의 근본 전제로 쓰이는 명제들을 데카르트에게서 찾고 싶었다. 심리학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순서'를 종종 물었다. 보통 프로이트부터 시작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심리학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보다는 학문적 순수 근원이 궁금했고 해답이 데카르트에게 있기를 바랐을 뿐이다. 또한 융의 심리학을 이해하는 것에만 내 목적이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수학을 배운 사람들은 으레 '대수(algebra)'와 '기하(geometry)'를 알고 있는데 좌표계의 혁명을 일으킨 당사자의 사고 패턴이 궁금했을 뿐이다.
이 책은 두 논문 (「방법서설」,「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의 내용이자 데카르트의 말을 정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순서는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이 먼저 나온다. 이 독후감은 「방법서설」을 읽고 있는 도중에 앞의 것만 읽고 작성한 것이다. 나의 니즈와 비슷한 것을 갖고 있는 독자들은 후 순서인, 「방법서설」부터 읽는 것이 타당하다. 책 자체의 내용이 깊고 원서에 입각한 번역이며 독자들에게 친절한 해설을 제공하지 않기에 「방법서설」만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 책의 내용상 가장 한계로 인식되는 부분은 **'단어에 관한 정의'**이다. 데카르트의 시각에서 정리한 내용이 현대의 시점에서 맞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미 밝혀진 분야에 관한 서술적 진술이 모두 반영되어 있지는 않다. 가령, 오성(悟性)에 관한 해석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알려져 있으며 이성(理性)이라는 개념과 분리해서 인지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이성은 '사물을 옳게 판단하고 진위, 선악, 미추를 식별하는 능력'으로 용어의 쓰임이 식별로 제한적이다. 오성도 그와 비슷하지만 '철학적·사유적' 의미가 들어간, 약간은 다른 느낌으로 인지한다. 일반적으로 '지성, 지력, 논리적 사고 능력'이라 일컫지만, 오성에서는 정신적인 직관적 인식능력이라는 포인트에 더 초점을 두는 편이다. 쉽게 말해서, 이성과 오성은 '안다'라는 말을 공유하지만, 이성은 결과적으로 배워서 식별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오성은 배우지 않고도 직관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 일종의 깨달음을 내포한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이런 단어를 교양적 측면에서 구분한다는 것이 큰 의미가 없고 굳이 단어로 구별할 것이 아니라 '직관성'이라는 포인트만 강조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이 첫 번째 한계라고 주장하고 싶다.
이와 비슷하게 *「14 규칙: 문제는 물체의 실제적 연장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그 전체가 간략한 도형으로 상상력에 제시되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문제는 오성에 의해 더욱 판명하게 지각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서술한 규칙부터 데카르트가 언급했던 '차원'과 '단위'에 관한 서술이 등장하는데, 이는 현대의 내가 아는 단어의 정의와는 다르다.
물체의 특성을 전제하기 위해 '양'의 개념과 '연장'을 서술했다. 그러나 현대의 열역학적 관점을 빌리면, 물체의 어떤 변수는 시강변수(intensive property), 시량변수(extensive property)로 명료하게 정리가 되어 있으며 단위(unit)는 물체의 양의 표현에 어떤 약속된 체계로 인지하기가 더 쉽다. 차원(dimension)은 기하학의 도움을 받아도 점(0차원), 선(1차원), 면(2차원), 입체도형(3차원)의 설명에 지나지 않으며 데카르트의 서술 과정처럼 복잡하게 나열할 이유가 없다.
단위와 차원에 관한 개념을 접근하려면 일반물리학의 첫 단원에서 배우는 내용이 더 쉽다. 단위는 표준 체계인 SI unit을 떠올리기가 더 쉬우며 이를 [M, L, T]* (*M은 질량, L은 길이, T는 시간)의 변수로 정리하는 것이 더 깔끔하기 때문이다. 문과 출신도 안다는 뉴턴의 제2 법칙, F=ma를 예시로 생각해 보면 F는 힘의 차원이자 단위는 [N]을 사용한다. m은 질량으로 [kg] 단위, M 변수 하나, a는 가속도로 [m/s^2] 단위로 나타낸다. 이를 MLT 변수로 정리하면 힘은
$$ M^1 L^1 T^{-2} $$
으로 나타낸다. 즉, 힘 차원 설명을 M, L, T의 요소만으로도 깔끔하게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확장해서 사고하면 에너지 차원까지 연계하여 설명할 수 있다. 물리의 식에서 W=F·S 라는 식을 배울 수 있는데, 중등교육 과정에서는 work(에너지)가 F와 S의 곱으로 나타내고 학생들은 이 식을 외우기에 급급했을 것이다. 그러나 차원의 면에서 힘과 에너지를 거시적으로 조명하면, 둘은 다른 차원이고 대학 과정에서는 W가 F와 S의 내적(dot product)임을 밝힌다.
$$ W=F·S $$
이런 기하적 연산까지 더하여 힘과 거리의 내적으로 '에너지'의 개념을 차원의 확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에너지가 힘보다 큰 차원이고 이를 기하학의 길이와 면적에 빗대면, 한 차원 수준의 확장이 이루어졌음을 이해할 수 있다. 연산으로 간단히 설명될 수 있는 단어들을 현대의 개념과 혼동할 수 있는 여지를 준 점이 한계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