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회복될 수 없는 실패도 있었지만.
내가 아는 한 그런 일을 겪지 않은 영은 없었다."
김애란 <침묵의 미래> 中 -
삶에서 극적인 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까, 불안한 예감은 쉽게 들어맞는다. 예감이 현실이 된다고 해서 우리의 삶은 무너지지 않는다. 불안한 예감만으로도 삶은 이미, 충분히 무너져 있다. 허탈감은 이후에 찾아오는 현실이 예감된 불행의 크기보다 크지 않음을 말해준다. 새로운 현실을 마주하고 살아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겠지만.
삶은 다양한 방식으로 다듬어진다. 일관적일 수 있는 삶은 관성을 지켜나가는 것만으로도 얼마간 가능하다. - 애초에 그런 삶에겐 다듬을 만한 것이 없지만. -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삶에게 정제는 사건으로 찾아온다. 그간에 힘껏 짓눌렸던 시간들이 단번에 무색해지는, 낯선 부조리들에 맥없이 내던져지는 방식으로 말이다.
신은 인간에게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을 주신단다. 인간을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건 아닐까.
우리의 삶이 섬을 닮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서로는 서로에게 영영 이르지 못한다. 살을 부비는 순간에도 그러하다. 누군가의 부조리는, 그래서 극의 형태로만 다른 누군가에게 전시된다. 웃고 울 뿐, 개입할 수 없다.
지난한 삶이다. 깊이 곱씹어 보지 않더라도. 인간에 대한 과도한 낭만화도, 현실에 박힌 뿌리 깊은 부정도 부조리를 거스를 수 없다. 마땅히 디뎌야 할 땅을 기억하고, 마땅히 닿아야 할 하늘을 분명하게 바라보는 것 말고는. 우리가 아는 한, 회복될 수 없는 실패를 겪지 않은 영혼은 없으니.
지금껏 그래왔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우리의 지난한 쌓기를 애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