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이 긴 독서의 여정이 막을 내렸다. 이 책은 군복무 시절 '할 것 없음'을 무의미하게 보내지 않겠다는 취지로 읽기 시작하였으나 햇수로 장장 읽는 데 8년이나 걸렸던 책이다. 책 자체의 내용이 어려운 점도 있지만, 긴 시간 동안 내 내면의 '짬바'가 어느 정도 늘어, 읽는 시간에 도움이 되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내가 이공학도로서 직교 좌표계 도입의 핵심인, 데카르트의 의도가 궁금했던 것이고 두 번째는 융 심리학의 '집단 무의식'의 전제로서 《정신 지도를 위한 규칙들》에서 보이는 그 어떤 교집합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서 데카르트는 철학자가 맞지만, 그가 연구한 학문이 타 학문의 근간이 되고 원시 학문의 중요한 소스(Source)를 제공하기 때문에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다만, 본 독후감에 앞서 《정신 지도를 위한 규칙들》과 《방법서설》은 서로 다른 논문이며 학술적 풀이에 적합한 것은 전자, 《정신 지도를 위한 규칙들》이며 그러한 논문의 집필 의도가 궁금한 것의 계기로 읽기에는 후자, 《방법서설》이 적합하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두 논문에 관해 아쉬운 점은 이러한 전제를 초기에 설명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실제로 본 책이 90년대 서적이어서 현대의 번역판으로 읽기에 해석이 어려운 점도 존재했었다. 실제로, 서술어를 읽기 어렵게 후술(後述)한 점도 있었고 해석 자체가 난해한 부분은 실제로 대우(對偶)명제를 취하여 읽은 바도 있었다. 만일 이 독후감을 읽는 사람들이 데카르트에 관해 순수한 호기심이 생겼다면 현대에서 번역된 《방법서설》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실질적으로 데카르트의 어떤 의도를 판단하기에는 《방법서설》이 더 적절하다. 간단히 알아볼 수 있는 사례는 '피코' 신부에게 보내는 서신이다. 《방법서설》은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이 읽어볼 만한 책이다. 당대의 그가 연구 논리 및 방법론을 저술한 것에 의의가 있고 이런 논문을 발간하면서 어떤 일반인들이나 경쟁적 연구자들로부터의 잘못된 해석을 우려한 바도 보인다. 그러면서 그는 후대의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여지와 자신만의 일관적인 학문론을 당시에 주장했음을 서두와 각 장에서 밝히고 있다. 쉽게 말해서 자기가 아는 게 많아서 자랑하려고 이런 논문을 쓴 것이 아니라 반박 불가 자료를 미리 남겨 놓았다는 점에 더 의의가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책의 본문은 알고 나면 특별히 어려운 내용이 아니다. 데카르트는 피코 신부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공부할 때 지켜야 할 순서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불완전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실생활에서의 행동을 규제할 수 있는 도덕을 설정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다음에 논리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중략) 진리를 발견하는 습관을 어느 정도 지니게 된 다음에 참된 철학과 진지하게 씨름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현대 인재 양성의 가장 우선되는 항목이 '인성'이라는 당위가 된다. 도덕을 먼저 강조하고 있다. 이는 지식의 주체가 인간임을 전제한다. 과학기술의 발전 자체가 인류에게 어떤 위협이 되는 것이 아니고 AI가 인류를 공격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작용의 전제에 이미 인류가 있다는 것이다.
도덕 다음의 논리에 관한 서술은 꽤 뜻깊은 주제가 된다. '강단 논리학'이라는 어떤 과목을 특정했지만, 간단한 표현으로는, 우리가 어떤 논리학을 배운다고 논리적인 사람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 후반에 기재된 해설에 나온 예제가 인상 깊었다.